2009년 11월 08일
친일파
나도 한때는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친일파를 분명히 밝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프랑스의 과거 청산처럼,
1. 자체 역량으로 주권 회복
2. 해방 직후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신속하게 진행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만 친일파 숙청이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기에 친일파 숙청을 못했다. 지금이야 헌법 전문에 우리나라가 임시정부를 승계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해방 직후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해방을 맞이한 게 아니라,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해방이 주어졌다. 임시정부 요인들 역시 임시정부 요인 자격이 아니라, 민간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은 일제 시대 관료였던 사람들을 그대로 군정에 활용했고, 그에 따라 미군정기에 친일파 숙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UN결의에 따라 치러진 남한만의 총선거 당시 김구와 같은 독립운동 세력이나 좌익 세력이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했더라면 친일파 숙청을 진행할 수 있었겠으나, 완전한 통일을 주장하며 총선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서 북한의 남침으로 6·25가 발발했다. 좋건 싫건, 당시 우리나라 군대에는 박정희와 같은 만주군에 복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 또한 복무하고 있었다.(엄밀히 말하면 박정희는 6.25 발발을 계기로 복귀한 것이지만)
난 적어도 이 시기에 전투에 참여한 만주군 복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친일파'라고 불러선 안 된다고 본다. 전쟁 초기 북한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급기야는 수도를 부산에 두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UN군이 올 때까지 임시수도를 지킨 군인들은 나라를 지킨 사람들이다. 정말 뼛속까지 '친일파'였다면 당장 전세가 유리한 북한 편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르나, 그들 중에는 분명 그러지 않고 싸운 사람들이 있다. 박정희 역시 6·25에 참전했고, 충무무공훈장도 받았다.
직접 지휘해서 항일독립군을 의도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소탕하려 한 만주군 장교라면 모르되, 6.25에 참전해 끝까지 싸운 사람들 중에서 만주군 복무 경력이 있다는 것만 가지고 친일파라며 민족의 배신자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백선엽 장군 포함) 6.25에서 이 사람들은 자신의 만주군 복무라는 경력상의 오점을 충분히 씻어냈다고 본다.
박정희를 부정하건 긍정하건, 그는 6.25에서 북한의 남침을 막아 남한 체제를 지켰고 다시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남한을 손에 넣고, 북한과 체제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결과는 지금과 같다.
6.25에서 북한을 막아낸, 또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북한과 싸운 사람들에 대해 '친일파'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건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순'이다. 그건 자기배반이다. 무엇보다 60여 년이 훌쩍 넘어 지나버린 지금에 와서, '친일파'라는 사람의 후손이 정치인으로 활동을 할 만큼 그 '친일파'라는 사람들이 체제의 한 구성원이 되어 한 세대, 두 세대를 보낸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친일파'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려 드는 건 그 정치인 내지는 '친일파'와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알량한 민족주의를 이용해 정치적 숙청을 꾀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좀 심하게 말해서, 추잡하다. 그것도 후손과 관련이 없는 일로. 일종의 '좌파적 연좌제'인 셈이다. 이쯤되고나니 수구꼴통이라는 사람들이 '빨갱이' 놀음하는 거나, 작금의 '친일파' 놀음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끝으로 나는 역사적으로 친일 행적에 대해 연구하는 일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난 프랑스의 과거 청산처럼,
1. 자체 역량으로 주권 회복
2. 해방 직후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신속하게 진행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만 친일파 숙청이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기에 친일파 숙청을 못했다. 지금이야 헌법 전문에 우리나라가 임시정부를 승계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해방 직후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해방을 맞이한 게 아니라,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해방이 주어졌다. 임시정부 요인들 역시 임시정부 요인 자격이 아니라, 민간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은 일제 시대 관료였던 사람들을 그대로 군정에 활용했고, 그에 따라 미군정기에 친일파 숙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UN결의에 따라 치러진 남한만의 총선거 당시 김구와 같은 독립운동 세력이나 좌익 세력이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했더라면 친일파 숙청을 진행할 수 있었겠으나, 완전한 통일을 주장하며 총선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서 북한의 남침으로 6·25가 발발했다. 좋건 싫건, 당시 우리나라 군대에는 박정희와 같은 만주군에 복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 또한 복무하고 있었다.(엄밀히 말하면 박정희는 6.25 발발을 계기로 복귀한 것이지만)
난 적어도 이 시기에 전투에 참여한 만주군 복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친일파'라고 불러선 안 된다고 본다. 전쟁 초기 북한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급기야는 수도를 부산에 두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UN군이 올 때까지 임시수도를 지킨 군인들은 나라를 지킨 사람들이다. 정말 뼛속까지 '친일파'였다면 당장 전세가 유리한 북한 편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르나, 그들 중에는 분명 그러지 않고 싸운 사람들이 있다. 박정희 역시 6·25에 참전했고, 충무무공훈장도 받았다.
직접 지휘해서 항일독립군을 의도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소탕하려 한 만주군 장교라면 모르되, 6.25에 참전해 끝까지 싸운 사람들 중에서 만주군 복무 경력이 있다는 것만 가지고 친일파라며 민족의 배신자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백선엽 장군 포함) 6.25에서 이 사람들은 자신의 만주군 복무라는 경력상의 오점을 충분히 씻어냈다고 본다.
박정희를 부정하건 긍정하건, 그는 6.25에서 북한의 남침을 막아 남한 체제를 지켰고 다시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남한을 손에 넣고, 북한과 체제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결과는 지금과 같다.
6.25에서 북한을 막아낸, 또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북한과 싸운 사람들에 대해 '친일파'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건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순'이다. 그건 자기배반이다. 무엇보다 60여 년이 훌쩍 넘어 지나버린 지금에 와서, '친일파'라는 사람의 후손이 정치인으로 활동을 할 만큼 그 '친일파'라는 사람들이 체제의 한 구성원이 되어 한 세대, 두 세대를 보낸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친일파'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려 드는 건 그 정치인 내지는 '친일파'와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알량한 민족주의를 이용해 정치적 숙청을 꾀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좀 심하게 말해서, 추잡하다. 그것도 후손과 관련이 없는 일로. 일종의 '좌파적 연좌제'인 셈이다. 이쯤되고나니 수구꼴통이라는 사람들이 '빨갱이' 놀음하는 거나, 작금의 '친일파' 놀음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끝으로 나는 역사적으로 친일 행적에 대해 연구하는 일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 by | 2009/11/08 03:12 | 트랙백 | 덧글(0)



